美 UCLA대학 수불스님 ‘간화선 특강’   2012-12-10 (월) 10:30
선원수좌복…   3,837



“흙탕물 가라앉혀 맑히는 게 명상이라면
제아무리 흔들어도 흙 일지 않는 경지가 禪” 
 
 
법회중계 / 美 UCLA대학 수불스님 ‘간화선 특강’
 
 

지난 11월7일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의 UCLA 대학 불교학센터는 수불스님(범어사 주지, 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을 초청하여 ‘ 한국 간화선 수행법’ 특강을 실시했다. UCLA 교내 유서 깊은 커크호프 홀의 찰스 E. 영 홀에서 열린 특강에서는 동 대학 교수 및 학생 그리고 인근 지역 명상수행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통역은 한국계인 UCLA 불교학센터 원장 로버트 버스웰 교수의 부인 크리스티나 버스웰이 맡았다.
    
지난 11월7일 UCLA대학 불교학센터 강당에선 2시간에 걸친 수불스님의 화두법문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특강이 끝난 후 수불스
님은 범어사 목판본 <선문촬요>를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수불스님의 법문 정리

좋은 인연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불교의 공식적인 수행법인 간화선의 실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인류는 어리석음을 지혜로움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끝에 그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발전한 사회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엄청난 질적, 양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무지에서 무지의 지를 눈뜬 결과였습니다. 시작과 끝이 동시인 모습없는 모습에서 정신적 장벽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발견하셨고 이것이 1500년이 흘러 간화선이라는 방법으로 발전하여 오늘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물질적인 벽은 얼마든지 느끼고, 또 허물 수 있는 반면, 정신적인 벽은 대부분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벽을 예를 들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물건을 무엇이 봅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눈이 본다거나 마음이 본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상식이나 지식으로 말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눈이 본다고 하면 바른 답이 아닙니다. 눈이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하여금 보게 하는 놈이 있어서 보는 것입니다. 즉 무언가가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들은 자신의 눈을 직접 볼 수 있습니까? 거울을 통해서 보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눈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눈을 보지 않고 보여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모든 것은 이미 자기의 눈을 먼저 봤기 때문에 보여지는 것입니다.
 
 
간화선의 실체…시작과 끝이 동시인
모습없는 모습에서 정신적 장벽 깨뜨려야
 
이제 여러분이 직접 정신적인 벽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겠습니다. 손가락을 들어서 한 번 튕겨 보십시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합니까?” 나입니까, 손가락입니까, 마음입니까? 한 번 해보라고 해서 합니까? 여기서 여러분은 문제를 외운다든지, 문제를 외우면서 답을 찾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문제는 한 번 보고 듣고 느끼면 됐고, 그 후로는 답만 찾도록 해야 합니다. 이 공부에 인연이 있는 사람은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답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때 어떤 정신적인 벽을 느낄 것입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합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손가락도, 나도,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손가락도 나한테 달려있는데, 죽는 순간부터 스스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나 손가락이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마음이 하는 것은 왜 아니냐? 그것은 깨달은 분이 설명하려고 갖다 붙인 이름에 불과할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보고 듣고 느끼고 움직이는 것이 모두 마음이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불법에서는 실질적인 것을 자각하도록 요구합니다. 불교는 대자대비하지만, 불법은 무자비의 자비로 오로지 진리만을 상대할 뿐입니다.
인연 있는 분이라면 알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눈앞이 갑갑한 어떤 정신적인 벽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뭔가 목에 걸려서 뱉어지지도 않고 삼켜지지도 않는 기운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답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모습을 말합니다. 거기에 우리는 정신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밝은 해를 볼록렌즈에 비춰 불을 얻으려고 할 때처럼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의 집중은 어느 한 곳을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집중은 알려고 하는 마음으로 인연된 갑갑한 마음에 사무치게 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뱃사공이 여울물을 만나서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빠른 물살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 벌써 멀어집니다. 그냥 밀려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때의 집중은 말할 수 없이 힘이 듭니다. 이것은 직접 체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화두를 매우 심하게 다스려야 분명하게 들려지게 될 것입니다.
 
이 일단의 일은 구리뭉치로 거울을 만드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구리뭉치로 거울을 만들 때는 먼저 강하게 두들겨서 납작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리뭉치가 납작해진 것만으로 자기 얼굴을 비춰볼 수는 없습니다. 납작해진 다음에 정성스럽고 섬세하게 다듬었을 때야 비로소 자기 얼굴이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같은 모든 과정을 본인 스스로 알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혼자서는 화두에 걸리기 어렵고, 걸리더라도 그 경계를 이겨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먼저 길을 가보고 눈을 뜬 경험자의 안내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공부가 되고 안되고의 문제는 눈 밝은 안내자를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수불스님과 강연 참가자들이 나눈 질의응답
 
 
질문 : 자기 눈을 스스로 볼 수 있다는 말을 이해 못하겠습니다.
: 이런 문제가 마음을 깨닫기 위한 핵심적 요소입니다. 우리는 ‘눈이 본다’거나 혹은 ‘내가 본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가 이미 자기 눈을 보고 있기에 사물이 보인다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깨달음에 쉽게 눈뜰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생명과 직접 연관이 있어서, 답을 아는 순간 자유로워집니다. 모르면 갑갑해서 참구해야 하고, 알면 시원하게 툭 터지게 됩니다. 종교를 넘어서서 진실 자체에 눈떠야 합니다. 명상이나 수행에서 무조건 앉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빨리 지혜의 눈을 뜨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앉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질문 : 명상과 선의 차이점은.
: 비유해서 흙탕물을 가라앉혀서 맑히는 것이 명상이라면, 선은 가라앉은 것도 흔들어서 뽑아 없애버리면, 아무리 흔들어도 흙탕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선입니다.
 
질문 : 스승 없이도 수행할 수 있습니까?
: 다른 수행은 몰라도 간화선은 스승과 제자가 직접 부딪쳐야 효과가 있습니다. 저는 스승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지남철에 끌려가듯이 첫 눈에 나의 스승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저 분이다!”는 확신이 든 거지요.
 
불교수행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가능한 것이지, 스님과 신도의 관계로는 깊은 수행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제간에 돈독한 믿음의 인연이 주어졌을 때, 줄탁동시의 기연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간화선 수행에서는 선지식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기연이 이루어질 때는 순간적으로도 깨달음이 일어나지만, 그렇지 못하면 천 년을 지내도 요원합니다.
 
질문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화두가 될 수 있습니까?
: 그 질문은 주객을 끝없이 나눌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선에서는 주객이 나누어지지 않도록 “이뭣고?” 혹은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무엇인고?”라고 묻습니다. 진리는 둘 셋으로 쪼갤 수 없기 때문에, 선은 처음부터 주객이 나누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간화선에서 주객이 나누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장치를 활구 의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간화선의 핵심으로, 선지식의 인도를 받아 본인이 직접 체험해봐야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인연이 있어서 진정한 화두 의심이 들려지면, 의심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진행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활구 의심이라고 합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옆에 선지식이 있어서 역순경계를 넘어 정신적인 벽을 깨트릴 수 있도록 가닥을 쳐주어야, 공부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이드가 없이 하는 수행은 어리석게 허송세월만 보내기 쉽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선지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좋은 수행 인연을 만나길 빕니다.
 
 
[불교신문 2871호/ 12월8일자    하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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