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참선의 깨달음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이 다르지 않다???(수행요소)   2019-08-30 (금) 21:25
선원수좌선…   318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와 성도에는 화두참선의 수행요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고통을 일으키는가? 어떻게 고통을 소멸시키는가? 어떻게 모두를 이롭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 생사를 건 고뇌와 실천에는 간화삼요의 심리적 요소들이 분명이 내재하고 이에 따라 이룬 깨달음은 분명 간화선 수행과 통합니다. 때문에 간화선의 정통성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물론 수행요소 뿐만 아니라 깨침의 내용과 열매도 다르지 않습니다.


< 석존의 깨침과 간화 삼요 >


1) 대신근(大信根)  

수행의 필수적인 요소 중 첫 번째가 믿음이다. 특히 간화행자의 이 믿음을 대신근(大信根)’이라 하여 뿌리에 비유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고 서 있듯이 바른 믿음이 견고해야 화두공부가 원만히 성취될 수 있다

 

신심은 첫째, 깨달음의 문이 있다는 믿음이다

 즉 깨달음으로써 법칙을 삼는다(以悟爲則)는 간화선의 특성을 말한다. 즉 고불고조들의 깨달음에 대한 모습들을 통해서 깨달음의 문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선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있었기에 깨달음을 향한 발심으로 이어져 출가하여 선지식을 친견하고 수행하고, 홀로만의 고행과 선칠로 이어져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둘째, 불성에 대한 믿음이다

 일체 모두는 본래 불성을 구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석존의 성도이후 一聲지혜와 자비의 불성은 석존께서 직접 설하신 내용이며 또한 깨치신 내용이기도 하다. 연기성 공으로부터 부처 성품이 발하기에 누구나 부처됨이 가능하고 당연한 믿음이니 곧 불성에 대한 믿음이며 발심과 ()보리심의 토대가 되는 근본 인연이다. 이 것이 석존 가르침의 진정한 뜻이고 정법정안의 조사로서 출세한 일대사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화두에 대한 믿음이다

 간화선 수행으로 반드시 일대사를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행으로 일대사를 깨친 선사들의 기연인 선문답에서 비롯된 화두. 이 화두에 대한 믿음은 화두 수행으로 깨치고자 하는 간화행자의 발심과 ()보리심에 꼭 필요한 토대이다. 화두참선은 무상, , 무아, 연기성, 공성, 중도, 불이, 불성, 자성만법, 열반적정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화두는 마하반야의 불성으로 팔정도의 계정혜와 대자비의 행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의 출가 동기, 즉 고에 대한 번민과 의문, 소멸에 대한 열정의 화두야말로 대의정이고 고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세상과 인간사 고통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통찰을 이루었다. 즉 일체를 알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선행되어 있는 것이다.

 

넷째, 스승인 본분종사에 대한 믿음이다.  

어느 날 앙산이 고봉에게 오늘 부터는 네가 부처를 배우려고도 말고 법을 배우려고도 말고 옛것을 궁구하지도 말고 지금 것을 궁구하지도 말라. 그저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거든 잠자고 잠이 막 깨거든 정신을 가다듬어 한결같이 깨닫는 주인공이 필경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 하는가를 생각하라.”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함이 마음에 간절하여 생사의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참선을 하고자하는 발심행자는 제일 먼저 스승을 찾는 일이 급선무다. 간화선에서 스승의 역할은 수행자의 생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스승은 제자에게 신심을 심어주고, 사량분별 없이 화두를 잘 참구하도록 이끌어주고, 근기가 익었을 때 깨달은 바를 시험하고 다시 그 안목을 일깨워 바른 깨달음을 얻도록 끝까지 공부를 점검해 주는 사람이다. 스승은 본분을 깨달은 본분종사여야 한다. 간화행자의 스승에 대한 믿음과 믿음에서 기인한 스승이 제시 언구를 의심하는 것-화두는 깨침과 직결되며 스승의 지도, 외호, 동행의 역할(선지식, 도량, 도반)은 간화행자의 선호념선부촉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스승이 부재일 땐 석존의 가르침()이 스승이 된다.

 

 석존의 스승에 대한 믿음과 관련한 내용은 출가 후 스승참문을 통해 얻은 구차제정(8)의 증득으로 나타나지만 이어지는 고행과 정각은 홀로 이룬 것이기에스스로 깨달은 자라고 설하신다. 석존의 대신심은 고통의 소멸과 깨달음에 대한 믿음과 부처의 성품에 대한 믿음이다. 이러한 석존의스스로 깨달은 자(자력적 깨침)’라는 내용은 역대 제불조사선지식들의 깨침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이고 정각 전까지의 선근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자력적 깨침은 혜능의 선지식(善知識)!”, 임제의 無依眞人이라는 표현과 조사선 선사들에게서 나타나는 깨침의 특징에도 보여 진다. 조사들의 깨침에는 정안종사의 지도와 인가가 포함되나 궁극의 깨침, 안심입명하는 주인공의 본래면목 자리는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에 의해서 독창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간화행자에게 있어 신심과 의심은 서로 분리해서 이해될 수 없는 유기적 관계이다. 단편적으로 보면 신심과 의심은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네 가지 신심인 대신근의 결정신(決定信)은 큰 의심을 일으키는 만유인력(중력)과 같이 작용한다.

 

3) 대분지(大憤志)

 

 대분지의 분()자는 분개하다’, ‘번민하다는 뜻이고 지()자는 뜻을 두다’, ‘뜻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이 두자를 함께 쓴 분지(憤志)의 뜻은 크게 분개하고 번민하는 뜻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대분지라는 것은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났을 적에 당장 한 칼에 두 동강을 내고자 함과 같은 것인데 석존이 약육강식과 노병사를 보고 일어난 번민, 출가, 세 스승 친견과 고행을 통해서 고의 소멸, 무상안온의 열반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 대한 분지, 또한 고행과 목숨을 건 용맹정진-선칠에 두루 작용하여 인욕하며 간절하게 끝까지 깨달음을 완성시키는 강한 동력이다.

 

이 일법의 落處를 보려면 마치 어떤 사람과 생사의 원수를 맺은 것과 같이 해야 한다. 마음에 분한 생각을 내어 곧 그와 일도양단을 하고자 하여 잠깐도 쉼이 없이 모두 맹렬하고 날카롭게 채찍질하는 시절이 되어야 한다.”

 

진실로 분한 마음을 내어 정진하되 한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공부하지 않으면 어찌 목석과 다를 것이 있겠는가. 무릇 공부를 하여 구경의 경계에 이르면 자연 무심삼매에 들게 되니...”

 

이 일의 적실하게 공부하는 간절한 곳은 마치 맞붙어 씨름하는 것과 같아서... 만일 쇠로 된 눈, 구리로 된 눈동자를 가진 자라면 분하고 원통해서 당장에 한 주먹으로 때려 부수고 한 입으로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이 대분지를 일으켜야 하는 단계는 어느 정도 화두의심이 순숙해졌으나 의정이 계속 이어지지 않을 때이며,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분발심을 내어 용맹정진하여 대의정을 일으켜 크게 분한 뜻을 내고 큰 의심을 일으키되 바로 그러한 때에 사람과 경계가 함께 없어지고 마음의 기능이 툭 끊어지면무심삼매에 들게 된다. 그러므로 대분지는 대의정을 일으키기 위한 대용맹심이며, 대정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석존 또한 6년간의 고행에도 불구하고 깨침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양극단을 여의는 중도지혜로서 비추어 고행을 멈추고 기력을 회복한 후 다시금 대분지로서 7일간의 용맹정진-선칠에 임하여 드디어 깨치신다. 이처럼 대분지는 깨닫고자 하는 뜻을 둔 간화 행자에게 번뇌와 망상, 혼침과 도거의 물결이 닥쳐오는 자리에서 오직 화두만을 잡도리하는 용맹심과 정진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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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요?